2008년 05월 24일
그냥 갑자기 기분이 안좋아져서 쓰는 뻘글.
#1.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떤 계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난 내 자신이 어떻게든 인정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내가 맘에 안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로 의기소침해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슨 일을 하던 난 다른 사람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해야만 했다.
Passion. '열정'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아주 긍정적인 의미를 보이는 듯하다. 물론 Madness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기에 그럴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열정 이면에 다른 생각이 있는 나에게는, 이 단어는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차라리 Madness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게, '인정받음'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마치 광기어린 듯하단 생각이 들기 때문에.
#2.
여기서 또한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인정받음'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명사', 즉 사물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하나의 행위를 일컫는 말이란 점이다. 우리는 흔히 '인정받는다'라는 말을 할 때, 'A가 B라는 행위를 통해 C에게서 인정받는다'라는 공식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피아가 실험보고서를 잘 써서 조교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담이지만, 실험보고서를 아주 잘 쓴 덕분에 보고서 하나를 빠뜨렸는데도 A+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실험만 잘했지 이론은 개차반이었다.)
내 경우,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는 것도 물론 아주 중요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열정적이다'라는 말이 내게 심심해서 적용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특별히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에 가장 신경을 쓴다. 도대체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애정결핍인지, 관심에 목마른 건지, 그저 칭찬을 받고 싶은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세번째 상황이 이유가 되는 듯하지만,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하니 그저 Pass.
#3.
뭔가 심각하게 길게 썼지만, 그래. 사실은 잔소리를 좀 들었다. 이렇게 쓰면 대부분의 반응은 이럴 것이다. '그깟 잔소리 가지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냐'라고. 그래, 당연하다. 살면서 잔소리를 듣지 않을 수는 없는 거다. 특별히 내가 엄친아나 엄친딸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하지만 난 잔소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들어야 할 상황이라서 듣는 잔소리가 있을 것이고(예를 들어 아무 이유 없이 통금시간을 어기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 반대로 전혀 들을 상황이 아닌데 듣는 잔소리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들은 잔소리는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웠고, 그래서 다른 날보다 더 기분이 나빠 이렇게 블로그에 성토를 해본다.
그래. 나 이런 작은 거에 광분하는 소심한 인간이다. 젠장맞을.
#4.
지금의 내 나이면 예전에는 애 엄마였을 거라는 그 이야기. 그러면서 집안일을 제대로 안한다는 논리. 전날 밤 10시가 넘어서 다음날 아침밥 준비했다는 것도,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졸았을 만큼 피곤했던 것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오빠보다 먼저 집을 나갔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집 청소를 하지 않은 상황까지 모두 내가 뒤집어쓴 상황. 그러나 이걸 제대로 말할 수 없음은, 내가 만약 입을 열었다가는 오빠가 분명 나한테 이걸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침부터 기분 잡치게 째려볼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참 이상하게 나는 오빠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그리고 그 공포증과 함께, 난 가족 중에서 우리 오빠를 제일 싫어한다.)
지나가면서 던진 그 말. '나는 니네들 때문에 살 힘이 없다'라는 그 말. 인정받기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내 마음에 새겨진 엄청난 scratch. 사실 바로 위에 적은 말보다 이 말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의 회로가 항상 일관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너는 그런 것도 제대로 못하냐. 살 가치가 없다. 뭐하러 사냐' 등등. 그래, 집안일도 잘 못하고 취직도 못하고 있는 그런 딸을 보는 부모 마음이야 오죽하련만, 참, 뭐랄까, 백조로 살면서 스트레스 때문에 임파선이 부었다는 의사의 진단을 집에 가서 말했을 때 '니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냐'라고 던진 그 한마디가 갑자기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
#5.
미치도록 인정받고 싶어했다. 지금도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난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계속 나는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르기를 요구받고 있다.
아니, 인정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이해해주면 안될까. 아니, 이해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여 주기를. 비정상이니 정상이니, 너는 이게 문제니 어쩌니,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를 풀어내지 말고, 그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면 안될까.
교회에서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얘기하면서, 교회 밖을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항상 잔소리에 노출이 되어 있다.
#6.
그런 잔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다짐한다. '내 자식에게는 절대 그렇게 대하지 않으리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리라.' 하지만 잘 알고 있다. 그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 혹은 자신에게 속한 것을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려 하기 때문이다. 십계명에 괜히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이 있는 게 아닐테니 말이다.
그러나 딱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 나 스스로도 내 자신을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괴로워하는데, 그저 그렇게 불난 곳에 부채질만 좀 하지 말아주기를. 다른 이들처럼 대기업에 들어가서 돈 많이 벌고 학벌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과 결혼할 거란 막연한 기대는 버려주기를. 너는 왜 아직도 취직 못하고 그러고 있냐, 생각이 있는 거냐, 이런 따위의 말은 제발 내 앞에서 하지 말기를.
# by | 2008/05/24 22:29 | 잡다한 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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